청년 창업가로서 살아온 장승포의 모습
인구감소, 지역 청년 인구 유출 등으로 지역소멸 위기가 부각되면서
도시민의 지방 이주는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출신지로 돌아오는 U턴, 출신지 언저리 도시로 이주하는 J턴, 그리고 아예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의 이주는 I턴으로 불리며
로컬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살아가는 청년들의 새로운 삶을 응원하고 또 꿈꾸는 청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항구마을 릴레이 인터뷰 네 번째 주자로 지목된 장승포 청년 DY 님은 아버지의 고향인 장승포로 이주해
성공적인 창업을 이루고 활발한 사업 펼치고 계신 청년 창업가셨는데요, DY님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까요?
ㅣ 장승포의 청년 창업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자기소개 간단하게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장승포에서 거주하고 있고 배달 대행 업체 운영과 장승포 수산에서 아나고회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장승포의 특산물인 장어를 아나고회로 가공해서 배달 및 온라인 판매를 하고 있고 거제시와 근처의 통영까지 통틀어서 부산의 기장식으로 판매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눈꽃 아나고회” 라고 수제 초장과 함께 포장해서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눈꽃 아나고회 라고 소개해 주셨는데, 아나고회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는건가요?
네, 지역별로 즐겨 먹는 스타일이 있어요. 추어탕도 남원식, 진주식, 서울식이 있는 것처럼 세꼬시라고 뼈째 썰어먹는 스타일이 있고 포를 뜨는 것도 있구요, 기장식은 아주 살짝 데쳐서 갈아대듯 회를 뜬 후에 식품용 탈수기에 넣어 수분을 제거한 뒤 먹는데 포슬포슬한 모습이 눈꽃같아서 '눈꽃 아나고'라고 부릅니다. 이가 좋지 않으신 분, 여성분들이 많이 선호하시는 스타일이예요. 저는 세꼬시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눈꽃 아나고회를 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눈꽃 아나고회에 사용하시는 장어는 장승포산을 취급하시나요?
네, 무조건 장승포 장어만 취급합니다. 없으면 그냥 안팝니다. 그렇게 해서 제주도까지 전국적으로 택배 유통까지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주문은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받고 있고 손님들한테 배달료를 붙여서 판매하기 싫어서 제가 또 배달업체도 운영을 하게 되었는데 또 마침 오토바이 타는 것을 좋아해서 주문을 싹 모은 다음에 3시부터 작업해서 2시간이면 완성이 되거든요. 그래서 5시에 지세포, 아주, 옥포, 장거리까지 최대한 신선하게 무료 배송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장승포산 장어만 고집하시는 철학이나 이유가 있을까요?
단순합니다. 제 고향, 우리 지역거니까요.
사업을 준비하게 된 과정에 대해 좀 자세히 듣고싶습니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죠. 아버지께서 전국적으로 장어구이를 유통하고 판매하시니까. 우연히 부산 기장에 갔는데 눈꽃 아나고회를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그러고 바로 시장 조사를 했는데 아무도 안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바로 시작을 하게 되었고 하다 보니 또 배달비를 내기 싫어하는게 보여서 내가 직접 갖다 주자. 내가 그냥 손님한테 찾아가자는 마인드로 조합을 해서 시스템을 잡아봤는데 이게 자리가 잘 잡혀진 것 같습니다. 시작한지는 얼마 안되었는데 감사하게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어요. 다들 하는 말이 장승포치고는 빠른 상승세라고 하더라구요.
평소에 아나고회를 즐겨드시나요?
농담이 아니고 10kg 만들면 거의 1kg 는 제가 혼자 먹어요. 아버지께서 "니 이거 니가 먹을라고 장사하지?" 하시는데 저는 "내가 먹어봐야 팔것아닙니까? 아버지" 라고 대답하죠. 사실 일이란게 계속 하려면 좋아해야되고 하니까. 아나고를 좋아하게 된 첫 번째 계기도 아버지였어요. 어느 날 아버지께서 아나고회를 칼로 숭덩숭덩 썰어서 한 움큼 딱 집으시더니 제 밥 위에 그냥 올려주시더라구요. 야채도 없이요. 그냥 초장 딱 뿌려서. “먹어 봐라. 이게 아버지 어릴 때 배에서 일할 때 먹었던 아나고회다.” 하시면서. 그때 먹었는데 뭔가 직감적으로 딱! 느낌이 왔어요. 너무 맛있었고 감동이었습니다.
ㅣ 지역에서 살아가는 삶
지역 내 유통업자들 간의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지는 편인가요?
저한테는 삼촌 뻘되시는 분들께서 많이 배우러도 오시고 저는 또 알려드리기도 하면서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할 수 있으면 같이 하고 벌면서 공존하며 살아가야죠. 따지고 보면 저는 다른 데는 있지만 여기(장승포)에는 없는 걸 갖고 와서 사업을 시작한 것 뿐이니까요.
장승포 토박이이신건가요? 아니면 이주를 해오셨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학창시절을 서울에서 보냈고,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서야 장승포로 이주하게 되었죠. 보통 연고가 없는 분들이 지역사회에 이주했을 때 내부인(지역사람)으로 스며드는것에 대해 호소하시는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어요. 장승포는 부모님의 고향이고 아버지께서 11남매 중에 막내시니까요. 그러다 보니 일가 친척들만 모여도 버스 한두대는 대절을 해야 될 정도죠.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가족들이고, 또 가족의 지인들이고 그래서 적응의 어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남들보다 더 빨랐습니다. 학연, 지연하는 것들 그런 문화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보니 제가 배달업하는 것도 그런 기반 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더 빨리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어요.
장승포에 들어오셔서 텃세나 주민들과의 위화감을 겪는 문제들은 없으셨다는 말씀이시죠?
조금 편협하고 배타적인 특성은 있어요. 속된 말로 '자기들끼리 해먹는다' 같은. 그래서 처음부터 바로 깊숙하게 녹아드는 게 어려운 한 편, 그런 점 때문에 존재하는 장점도 분명히 있거든요.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달려와 주시고 일 처리가 빨라지게 되는 부분 같은. 관계망이라고나 할까요? 절차나 규정으로 묶어낼 수 없는 유효한 삶의 방식이 있어요. 지역에서 절차 따지는 건 동사무소나 시청 빼고는 없다고 볼 수 있죠.
ㅣ 인구감소 문제와 지역 활성화
지역사회의 인구 감소 문제 피부로 느끼시나요?
네, 확실히 많이 줄어들고 있죠. 저도 배달을 다니면서 특히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 집에서 항상 배달을 시켜왔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요. 하나씩 하나씩. 배달을 시키시다가 어느 순간 택배를 시키셔서 어디로 가셨냐고 물어보면 진주, 창원 여기(장승포)보다 조금 더 큰 도시로 갔다는 소식들도 자주 듣거든요. 그러다보니 단골이었던 젊은 층들이 다른 지역으로 자꾸 빠져나간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죠. 인근 지역인 옥림같은 경우에도 조선소 기숙사가 아예 통째로 없어졌고요.
어떤 분야의 사람들이 장승포에 들어왔으면 좋을것같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래도 어업이죠. 근데 지금 어업은 포화 상태예요. 어획량도 매년 줄어들고 있고. 포화 상태이지만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라 문제 해결이 필요해 보여요. 내국인은커녕 외국인 노동자들도 지금 구하기가 어려워서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삼삼해물, 아웃도어 라운지 밗이 장승포에 들어오면서 동네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연히 바뀌었죠. 예전에 이 구역은 좀 어두컴컴하고 들어서면 으슥했어요. 그런데 저 건물 들어서고는 밤마다 불이 켜져 있으니 아무래도 동네가 좀 밝아진 느낌도 들고 또 확실히 주변이 깔끔해졌어요. 예전엔 휑하고 쓰레기도 막 방치되어있고 그랬거든요. 도로 공사도 다 해서 깔끔해지고 산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으니 사람들도 이쪽으로 발길을 자연히 옮기게 되고 너무 좋습니다. 정말 잘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공부하셨던 분야는 어떤 분야였어요?
호텔 외식조리학과 전공했고.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일식집에서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칼 잡는 일만 쭉 해왔었습니다.
청년 창업가의 하루 일과를 소개해 주신다면?
보통 새벽 5시에 기상해서 11시반~12시까지 지게차 운전을 했고 그 다음에 퇴근해서 운영하는 배달업체 가맹점 관리하다가 3시부터는 주문받았던 물량 준비하고 5시부터 배송을 시작하면 거의 1시간 정도 소요가 되요. 그리고 들어와서 또 저녁에 콜들어오는거 보고 배달들어오면 배달하고 새벽 1시 정도까지. 그 당시에 잠은 하루에 4시간 잤습니다. 요즘은 지게차 일을 잠시 쉬고 있어서 낮 시간에 잠 잘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서 그 동안 밀린 잠을 많이 자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계신 일 관련해서 앞으로의 미션이 있다면?
앞으로 고현쪽으로 영업을 확장하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여기서 잘되니까 서울로 가는건 어떻느냐 하시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한 가지 한번하면 쭉 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냥 크게 벌고 싶은 마음도 없고 지금에 만족하면서 지역에서 이대로 꾸준히 쭉 하고싶어요.
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고 하면 어떤 역량을 가지신 분과 해보고 싶으세요?
저의 경우에는 온라인이죠. 온라인 마케팅 쪽. 장사라는게 결국 많은 사람들한테 노출이 되어야하고 홍보가 이루어져야하니까요. 제품이 좋아야하는건 당연한거고. 지역은 제가 알아서 다 할 수 있는데 전국 단위로 홍보를 하게 되는 단계는 제 역량 밖의 일이라 그런 것들을 잘 하시는 분들이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장승포에 오게 될 청년 혹은 활동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장승포에 대해서 소개해 주고싶은 것이 있다면?
공기가 좋습니다. 공기가 좋으니 마음도 덩달아 편해지고. 마음이 편하다고 너무 안주하지는 말고 부지런 해야해요. 저기 지나가는 오토바이처럼 계속 움직여야 합니다. 부지런히 변화해야해요. 지역에서는 특히나 돈을 벌 수 있는 인프라가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알아서 찾아서 부지런히, 바퀴가 움직이면 돈이 들어오고, 바퀴가 멈추면 돈도 멈추니까요.
ㅣ진행 : 박황미
ㅣ촬영 : 박재국
ㅣ편집 : 박황미, 김주하
본 릴레이 인터뷰는 <해양수산부 어촌활력증진지원 시범사업(장승포권역)>의 일환으로 운영하였습니다.
ⓒ 2023. 공유를위한창조
청년 창업가로서 살아온 장승포의 모습
인구감소, 지역 청년 인구 유출 등으로 지역소멸 위기가 부각되면서
도시민의 지방 이주는 큰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출신지로 돌아오는 U턴, 출신지 언저리 도시로 이주하는 J턴, 그리고 아예 연고가 없는 지역으로의 이주는 I턴으로 불리며
로컬에서 새로운 삶을 개척하고 살아가는 청년들의 새로운 삶을 응원하고 또 꿈꾸는 청년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항구마을 릴레이 인터뷰 네 번째 주자로 지목된 장승포 청년 DY 님은 아버지의 고향인 장승포로 이주해
성공적인 창업을 이루고 활발한 사업 펼치고 계신 청년 창업가셨는데요, DY님의 이야기를 함께 만나볼까요?
ㅣ 장승포의 청년 창업가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 자기소개 간단하게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장승포에서 거주하고 있고 배달 대행 업체 운영과 장승포 수산에서 아나고회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장승포의 특산물인 장어를 아나고회로 가공해서 배달 및 온라인 판매를 하고 있고 거제시와 근처의 통영까지 통틀어서 부산의 기장식으로 판매하는 유일한 곳입니다. “눈꽃 아나고회” 라고 수제 초장과 함께 포장해서 판매를 하고 있습니다.
눈꽃 아나고회 라고 소개해 주셨는데, 아나고회의 종류가 여러 가지가 있는건가요?
네, 지역별로 즐겨 먹는 스타일이 있어요. 추어탕도 남원식, 진주식, 서울식이 있는 것처럼 세꼬시라고 뼈째 썰어먹는 스타일이 있고 포를 뜨는 것도 있구요, 기장식은 아주 살짝 데쳐서 갈아대듯 회를 뜬 후에 식품용 탈수기에 넣어 수분을 제거한 뒤 먹는데 포슬포슬한 모습이 눈꽃같아서 '눈꽃 아나고'라고 부릅니다. 이가 좋지 않으신 분, 여성분들이 많이 선호하시는 스타일이예요. 저는 세꼬시부터 시작해서 요즘은 눈꽃 아나고회를 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눈꽃 아나고회에 사용하시는 장어는 장승포산을 취급하시나요?
네, 무조건 장승포 장어만 취급합니다. 없으면 그냥 안팝니다. 그렇게 해서 제주도까지 전국적으로 택배 유통까지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주문은 아침 9시부터 5시까지 받고 있고 손님들한테 배달료를 붙여서 판매하기 싫어서 제가 또 배달업체도 운영을 하게 되었는데 또 마침 오토바이 타는 것을 좋아해서 주문을 싹 모은 다음에 3시부터 작업해서 2시간이면 완성이 되거든요. 그래서 5시에 지세포, 아주, 옥포, 장거리까지 최대한 신선하게 무료 배송을 해드리고 있습니다.
장승포산 장어만 고집하시는 철학이나 이유가 있을까요?
단순합니다. 제 고향, 우리 지역거니까요.
사업을 준비하게 된 과정에 대해 좀 자세히 듣고싶습니다.
아무래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죠. 아버지께서 전국적으로 장어구이를 유통하고 판매하시니까. 우연히 부산 기장에 갔는데 눈꽃 아나고회를 보고 이거다 싶었어요. 그러고 바로 시장 조사를 했는데 아무도 안하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바로 시작을 하게 되었고 하다 보니 또 배달비를 내기 싫어하는게 보여서 내가 직접 갖다 주자. 내가 그냥 손님한테 찾아가자는 마인드로 조합을 해서 시스템을 잡아봤는데 이게 자리가 잘 잡혀진 것 같습니다. 시작한지는 얼마 안되었는데 감사하게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어요. 다들 하는 말이 장승포치고는 빠른 상승세라고 하더라구요.
평소에 아나고회를 즐겨드시나요?
농담이 아니고 10kg 만들면 거의 1kg 는 제가 혼자 먹어요. 아버지께서 "니 이거 니가 먹을라고 장사하지?" 하시는데 저는 "내가 먹어봐야 팔것아닙니까? 아버지" 라고 대답하죠. 사실 일이란게 계속 하려면 좋아해야되고 하니까. 아나고를 좋아하게 된 첫 번째 계기도 아버지였어요. 어느 날 아버지께서 아나고회를 칼로 숭덩숭덩 썰어서 한 움큼 딱 집으시더니 제 밥 위에 그냥 올려주시더라구요. 야채도 없이요. 그냥 초장 딱 뿌려서. “먹어 봐라. 이게 아버지 어릴 때 배에서 일할 때 먹었던 아나고회다.” 하시면서. 그때 먹었는데 뭔가 직감적으로 딱! 느낌이 왔어요. 너무 맛있었고 감동이었습니다.
ㅣ 지역에서 살아가는 삶
지역 내 유통업자들 간의 교류도 활발히 이루어지는 편인가요?
저한테는 삼촌 뻘되시는 분들께서 많이 배우러도 오시고 저는 또 알려드리기도 하면서 함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할 수 있으면 같이 하고 벌면서 공존하며 살아가야죠. 따지고 보면 저는 다른 데는 있지만 여기(장승포)에는 없는 걸 갖고 와서 사업을 시작한 것 뿐이니까요.
장승포 토박이이신건가요? 아니면 이주를 해오셨나요?
저 같은 경우에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학창시절을 서울에서 보냈고,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서야 장승포로 이주하게 되었죠. 보통 연고가 없는 분들이 지역사회에 이주했을 때 내부인(지역사람)으로 스며드는것에 대해 호소하시는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어요. 장승포는 부모님의 고향이고 아버지께서 11남매 중에 막내시니까요. 그러다 보니 일가 친척들만 모여도 버스 한두대는 대절을 해야 될 정도죠. 동네 사람들 대부분이 가족들이고, 또 가족의 지인들이고 그래서 적응의 어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남들보다 더 빨랐습니다. 학연, 지연하는 것들 그런 문화가 아직 많이 남아있다보니 제가 배달업하는 것도 그런 기반 위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더 빨리 시장에 진입할 수 있었어요.
장승포에 들어오셔서 텃세나 주민들과의 위화감을 겪는 문제들은 없으셨다는 말씀이시죠?
조금 편협하고 배타적인 특성은 있어요. 속된 말로 '자기들끼리 해먹는다' 같은. 그래서 처음부터 바로 깊숙하게 녹아드는 게 어려운 한 편, 그런 점 때문에 존재하는 장점도 분명히 있거든요. 전화 한 통이면 바로 달려와 주시고 일 처리가 빨라지게 되는 부분 같은. 관계망이라고나 할까요? 절차나 규정으로 묶어낼 수 없는 유효한 삶의 방식이 있어요. 지역에서 절차 따지는 건 동사무소나 시청 빼고는 없다고 볼 수 있죠.
ㅣ 인구감소 문제와 지역 활성화
지역사회의 인구 감소 문제 피부로 느끼시나요?
네, 확실히 많이 줄어들고 있죠. 저도 배달을 다니면서 특히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이 집에서 항상 배달을 시켜왔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져요. 하나씩 하나씩. 배달을 시키시다가 어느 순간 택배를 시키셔서 어디로 가셨냐고 물어보면 진주, 창원 여기(장승포)보다 조금 더 큰 도시로 갔다는 소식들도 자주 듣거든요. 그러다보니 단골이었던 젊은 층들이 다른 지역으로 자꾸 빠져나간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죠. 인근 지역인 옥림같은 경우에도 조선소 기숙사가 아예 통째로 없어졌고요.
어떤 분야의 사람들이 장승포에 들어왔으면 좋을것같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무래도 어업이죠. 근데 지금 어업은 포화 상태예요. 어획량도 매년 줄어들고 있고. 포화 상태이지만 일손이 부족한 상황이라 문제 해결이 필요해 보여요. 내국인은커녕 외국인 노동자들도 지금 구하기가 어려워서 힘들어한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어요.
삼삼해물, 아웃도어 라운지 밗이 장승포에 들어오면서 동네 분위기가 좀 바뀌었다고 생각하시나요?
당연히 바뀌었죠. 예전에 이 구역은 좀 어두컴컴하고 들어서면 으슥했어요. 그런데 저 건물 들어서고는 밤마다 불이 켜져 있으니 아무래도 동네가 좀 밝아진 느낌도 들고 또 확실히 주변이 깔끔해졌어요. 예전엔 휑하고 쓰레기도 막 방치되어있고 그랬거든요. 도로 공사도 다 해서 깔끔해지고 산책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으니 사람들도 이쪽으로 발길을 자연히 옮기게 되고 너무 좋습니다. 정말 잘 들어왔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공부하셨던 분야는 어떤 분야였어요?
호텔 외식조리학과 전공했고. 아버지께서 운영하시던 일식집에서 설거지부터 시작해서 칼 잡는 일만 쭉 해왔었습니다.
청년 창업가의 하루 일과를 소개해 주신다면?
보통 새벽 5시에 기상해서 11시반~12시까지 지게차 운전을 했고 그 다음에 퇴근해서 운영하는 배달업체 가맹점 관리하다가 3시부터는 주문받았던 물량 준비하고 5시부터 배송을 시작하면 거의 1시간 정도 소요가 되요. 그리고 들어와서 또 저녁에 콜들어오는거 보고 배달들어오면 배달하고 새벽 1시 정도까지. 그 당시에 잠은 하루에 4시간 잤습니다. 요즘은 지게차 일을 잠시 쉬고 있어서 낮 시간에 잠 잘 수 있는 시간이 확보되서 그 동안 밀린 잠을 많이 자고 있습니다.
지금 하고 계신 일 관련해서 앞으로의 미션이 있다면?
앞으로 고현쪽으로 영업을 확장하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여기서 잘되니까 서울로 가는건 어떻느냐 하시는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한 가지 한번하면 쭉 하는 스타일이라서 그냥 크게 벌고 싶은 마음도 없고 지금에 만족하면서 지역에서 이대로 꾸준히 쭉 하고싶어요.
협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고 하면 어떤 역량을 가지신 분과 해보고 싶으세요?
저의 경우에는 온라인이죠. 온라인 마케팅 쪽. 장사라는게 결국 많은 사람들한테 노출이 되어야하고 홍보가 이루어져야하니까요. 제품이 좋아야하는건 당연한거고. 지역은 제가 알아서 다 할 수 있는데 전국 단위로 홍보를 하게 되는 단계는 제 역량 밖의 일이라 그런 것들을 잘 하시는 분들이있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장승포에 오게 될 청년 혹은 활동을 희망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나 장승포에 대해서 소개해 주고싶은 것이 있다면?
공기가 좋습니다. 공기가 좋으니 마음도 덩달아 편해지고. 마음이 편하다고 너무 안주하지는 말고 부지런 해야해요. 저기 지나가는 오토바이처럼 계속 움직여야 합니다. 부지런히 변화해야해요. 지역에서는 특히나 돈을 벌 수 있는 인프라가 잘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알아서 찾아서 부지런히, 바퀴가 움직이면 돈이 들어오고, 바퀴가 멈추면 돈도 멈추니까요.
ㅣ진행 : 박황미
ㅣ촬영 : 박재국
ㅣ편집 : 박황미, 김주하
본 릴레이 인터뷰는 <해양수산부 어촌활력증진지원 시범사업(장승포권역)>의 일환으로 운영하였습니다.
ⓒ 2023. 공유를위한창조